‘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영화가 역사를 스크린에 옮길 때마다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되풀이되고 있다.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망 사건을 소재로 한 ‘암살자(들)’을 두고 역사 왜곡 공방이 거세다. 과거에도 역사적 사건을 재해석한 영화들이 정치적 갈등과 법적 분쟁에 휘말린 사례는 적지 않다.
◆법적 분쟁에 항의 집회까지…반복된 영화 논란
임상수 감독의 영화 ‘그때 그 사람들’(2005)이 대표적이다. 1979년 10·26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을 블랙 코미디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박 전 대통령의 마지막 순간과 당시 권력자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는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상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은 부마항쟁과 박 전 대통령 장례식 등 다큐멘터리 장면 3곳을 삭제하도록 했다. 반발한 제작사는 풍자의 의미로 삭제 사유를 자막으로 띄워 해당 장면을 검은 화면으로 처리한 채 영화를 개봉했다.
‘화려한 휴가’(2007), ‘변호인’(2013), ‘택시운전사’(2017), ‘1987’(2017), ‘서울의 봄’(2023) 등 민주화운동과 군사정권 시절을 다룬 영화들도 정치적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화려한 휴가’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의도가 담긴 영화라는 비판과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작품이라는 반응이 엇갈렸다.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서울의 봄’(2023) 개봉 때는 영화가 왜곡된 역사의식을 심어준다며 일부 보수단체의 단체관람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영화를 단체관람한 중학교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교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상영 중단 등 다큐멘터리도 정치 갈등
역사적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정치적 갈등이 상영 중단과 외압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한 정부의 공식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한 ‘천안함 프로젝트’(2013)는 당시 해군 장교와 희생자 유족 등 5명이 상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그러나 멀티플렉스 영화관 메가박스는 보수단체 항의와 관객 안전 우려를 이유로 상영을 중단했다. 영화계는 외압 여부를 밝히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당시 야당 의원들도 기자회견을 열고 재상영을 촉구했다.
이듬해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작업을 둘러싼 의혹을 다룬 ‘다이빙벨’(2014)은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놓고 정치권과 충돌했다.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은 상영 취소를 요구했지만 영화제는 상영을 강행했다. 이후 부산시 감사와 이용관 집행위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 영화제 지원 예산 삭감 등이 이어지며 외압 논란이 확산했다.
‘건국전쟁’(2024)에서는 반대 양상의 정치적 논쟁이 벌어졌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립운동과 정부 수립 과정 등 업적을 조명한 작품으로, 보수 정치인들의 관람 인증이 잇따랐다.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직접 영화관을 찾았고, 일부 종교단체도 단체 관람에 나섰다. 이 전 대통령의 과오를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영화 관람 자체가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행위로 해석되면서 논쟁이 확산했다.
◆ 미국도 역사 왜곡 공방…의회 개입에 입법까지
해외에서도 역사적 사건을 재해석한 영화가 정치적 논쟁으로 번진 사례는 적지 않다. 미국에서는 영화 속 역사적 묘사를 둘러싼 공방이 의회 개입과 정부 기록 공개 문제로까지 확대되기도 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JFK’(1991)는 1963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암살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리 하비 오스월드의 단독 범행이라는 1964년 워런위원회의 결론과 달리 정부기관 등이 연루된 음모 가능성을 제기했다.
영화가 개봉하자 역사적 근거가 부족한 음모론을 사실처럼 전달한다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동시에 암살 관련 기밀문서 공개를 요구하는 여론도 커졌다. 이듬해 미국 의회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 기록 수집법을 제정해 관련 정부 기록의 수집과 공개를 촉진하는 절차를 마련했다. 영화가 촉발한 논쟁이 실제 입법에도 영향을 미친 셈이다.
캐스린 비글로 감독의 ‘제로 다크 서티’(2012)도 정치권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오사마 빈 라덴 추적 작전을 그린 영화로, 강압적인 심문과 고문이 빈 라덴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묘사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 다이앤 파인스타인·칼 레빈 의원과 공화당 존 매케인 의원은 제작·배급사 소니픽처스에 서한을 보내 영화가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관객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CIA가 제작진에게 제공한 정보와 관련 자료를 요구하는 등 영화의 역사적 정확성을 둘러싼 논쟁을 정보기관의 책임 문제로 확대했다.
◆논란은 왜 반복되나
어느 나라든 현대사는 오늘날에도 정치적 이념과 맞닿아 있는 소재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인물과 관점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이는 현재의 정치적 갈등으로 이어지기 쉽다.
영화의 대중적 파급력을 고려하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영화적 해석이 사회적 논쟁으로 번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역사책이나 학술논문보다 접근성이 높은 영화는 관객의 역사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기에 정치권이 작품을 진영 논리로 해석하고 디지털 문화가 갈수록 활발해지면서 온라인을 통해 논쟁이 더욱 빠르게 확산한다. 시민단체나 종교단체의 행동이 결합되면서 갈등은 증폭되고,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 정치적 입장이 앞서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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