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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시선] ‘시대의 얼굴’ 안성기 별세…69년 연기 인생 마침표

입력 : 2026-01-05 14:04:26 수정 : 2026-01-05 16: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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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국민배우 안성기가 5일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4세. 1957년 다섯 살의 나이로 아역 배우로 데뷔한 이래 69년간 한국영화와 함께 호흡한 그가 영원한 휴식에 들어갔다.

 

지난해부터 혈액암 투병 중이던 안성기는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목에 걸려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곧바로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입원 6일만에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유족으로는 화가인 부인 오소영 씨와 아들 다빈·필립 씨가 있다.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69년 연기 인생의 궤적

 

안성기의 연기 인생은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에서 만 5세의 나이로 시작됐다. 1960년 그는 김기영 감독의 10대의 반항으로 문교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국산영화상 소년연기상과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연기 천재소년’으로 주목받았다. 1960년 김기영 감독의 명작 하녀에서도 9살의 나이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학업과 군 복무를 위해 잠시 스크린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얄개전을 포함해 7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아역 배우로서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하고 육군 포병 소위로 군 복무를 마친 그는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성인 배우로 성공적인 재기를 이뤘다. 이 작품을 계기로 배창호 감독과의 인연이 시작됐고, 이후 둘은 한국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을 함께 만들어냈다.

 

1980년대는 안성기의 전성기이자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대였다.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1981)에서 젊은 승려로, 칠수와 만수(1988)에서 평범한 노동자로,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1984)에서 거지 왕초 민우로 출연하며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시대의 얼굴’이 됐다. 특히 고래사냥은 안성기를 당대 최고의 스타로 만들었고, 이장호·배창호·임권택 감독과 함께 만든 사회파, 리얼리즘 영화들은 한국영화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1993년 투캅스를 시작으로 안성기는 상업영화 영역으로 활동 범위를 확장했다.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냉혹한 킬러 장성민 역을 맡아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고, 2003년 실미도에서는 684부대 교육대장 최재헌 준위를 연기하며 한국영화 최초 천만 관객 시대를 여는 데 기여했다. 실제 장교 출신이었던 그의 이력이 배역에 설득력을 더했다.

 

2006년 개봉한 라디오 스타에서는 박중훈과 호흡을 맞추며 따뜻한 매니저 역으로 관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 작품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다. 화려한 휴가(2007), 부러진 화살(2012), 신의 한 수(2014), 사자(2019), 한산: 용의 출현(2022)을 거쳐 노량: 죽음의 바다(2023)까지, 그는 체력이 닿는 마지막 순간까지 카메라 앞에 섰다.

 

◆전방위 연기 스펙트럼…영화인의 존경을 받은 진짜 어른

 

총 140여 편에 이르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한국영화사 그 자체다. 거지부터 대통령까지, 승려부터 킬러까지, 교수부터 매니저까지, 구마 사제부터 장의사까지 안성기가 소화하지 못한 역할은 없었다. 종이꽃(2020)에서는 63년 연기 인생 최초로 장의사 역에 도전해 제53회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한국 배우 최초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안성기의 연기는 언제나 장르를 초월했다. 코미디부터 액션, 사극부터 느와르까지 전방위적 스펙트럼을 자랑하며 국민배우라는 칭호를 완성했다. 그래서일까. 안성기는 배우라는 직업의 품격을 높이는 데 평생을 바쳤다. 생전 한 인터뷰에서 “이 길로 들어서면서 배우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존중받고 동경받길 원했다”고 말했다.

 

또한 “전 국민배우가 맞는 것 같아요. 전국민이 팬이라고 생각해요”라며 대중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겼다.

 

연기 철학도 명확했다. “어떤 작품이든 그것이 역사성과 진실성을 지니고 자체 완결 구조를 갖는다면 기꺼이 헌신을 다하겠다”는 말처럼 작품의 완성도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드라마나 연극 출연 제의를 거절하고 오직 영화에만 전념했으며 철저한 자기관리로 69년간 구설 한 번 없이 활동했다.

 

후배 영화인들의 출연 요청에는 언제나 흔쾌히 응했고, 젊은 감독들의 작품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한국영화의 선배로서 귀감이 됐다. 그의 이런 태도는 많은 후배 배우들에게 배우로서의 길을 제시했다.

 

1990년대 후반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의 선봉에 섰고, 2000년에는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 단장을 맡아 한국영화를 지키기 위해 삭발까지 감행했다. 그의 헌신은 한국영화가 오늘날의 위상을 갖추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초대 이사장,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을 역임하며 영화계 후배들을 위한 길을 닦았다. 1991년에는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임명돼 사회 공헌 활동에도 힘썼다. 2024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영화분과 회원으로 선출되며 한국 예술계의 원로로서 인정받았다.

 

◆큰 별이 지다…추모 물결 이어져

 

안성기는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은 뒤 병마와 싸워왔다. 2022년 대종상영화제에서 공로상을 수상할 당시 “건강이 좋아지고 있다”며 복귀 의지를 밝혔고, 202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과 4·19 민주평화상 시상식 등에 모습을 드러내며 끝까지 영화인으로서의 삶을 이어갔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순택 대주교는 “한국 영화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예술인이자, 연기를 통해 국민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해준 분. 우리 사회에 밝은 빛이 되어주었다”고 애도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안성기 친선대사는 배우로서의 삶과 더불어 어린이를 보호하는 데에도 평생을 헌신하셨고 그 삶의 태도만으로도 우리 사회에 큰 본보기가 되어주셨다”며 “전 세계 어린이를 향한 깊은 사랑으로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와 함께해주신 안성기 친선대사님께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고 밝혔다.

 

고래사냥, 꼬방동네 사람들 등을 함께 만든 배창호 감독은 “그동안 함께 좋은 작품들을 할 수 있어서 든든했고, 감사했다. 주옥같은 작품들을 관객분들과 함께 오래오래 기억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후배 배우 신현준은 “좋은 배우는 좋은 사람이다. 사랑합니다 선배님”이라며 추모했고, 가수 배철수는 “만나면 늘 환하게 웃어 주시던 안성기 형님, 명복을 빕니다”라고 고인을 추억했다.

 

1957년 다섯 살 아역부터 2026년 74세까지, 안성기는 한국영화가 걸어온 모든 시대를 함께했다. 1960년대 아역 스타 시절, 1980년대 뉴웨이브 시대, 1990년대 충무로 전성기, 2000년대 천만 관객 시대까지 한국영화의 모든 변곡점에서 중심에 서 있었다. 시대의 얼굴이라는 수식어가 과장이 아닌 이유다. 

 

배우 안성기는 떠났지만 그가 스크린에 남긴 숨결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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