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정경호의 가장 큰 강점은 ‘어디선가 마주칠 것 같은 사람’을 연기하는 데 있다. 판타지성 인물도 설득력이 생긴다.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보스(라희찬 감독)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정통 후계자이면서도 탱고에 빠져 댄서가 되고자 하는 강표 역이다. 얼핏 황당해 보이는 이 설정조차 정경호가 연기하면 진짜 저런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목검을 휘두르다 탱고 스텝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장면마저 과장이 아닌 진심이 느껴지는 건 정경호가 가진 특별한 재능 덕분이다.
영화는 개봉 열흘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식구파 차기 보스 선출을 앞두고 각자의 꿈을 위해 서로에게 자리를 치열하게 양보하는 조직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정경호와 조우진, 박지환이 주연을 맡았다.
14일 정경호는 “처음에는 강표가 피아노를 치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3-4개월 연습하고 프로처럼 연주할 자신이 없더라. 마침 감독님이 탱고 레슨을 받고 계셨고, 함께 탱고바에 가게 됐다. 감독님께 ‘피아노가 아닌 탱고는 어떠냐’ 물어보고 다음 날부터 연습하게 됐다”라고 캐릭터의 비하인드를 전했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탱고는 강표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정경호는 “영화 속 액션 장면은 무술감독님, 촬영감독님과 한 땀 한 땀 만들었다”라며 “박지환과의 액션 장면은 대본에 ‘탱고로 조진다’라고 쓰여있다. 춤으로 압도한다는 건데 너무 재밌게 찍었다. 생각보다 너무 잘 나온 것 같아 개인적으로 만족한다”라고 웃었다.
중식 셰프를 꿈꾸는 순태(조우진), 탱고 댄서가 되고 싶은 강표, 허술하지만 보스가 되고 싶은 판호(박지환).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가려는 이들의 고군분투가 따뜻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여기에 식구파를 일망타진하기 위해 잠입한 언더커버 태규(이규형)까지 곳곳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정경호는 “워낙 형들의 캐릭터가 세서 중간에 나오는 강표가 걱정이었다. 중점을 둔 게 저만큼은 정상인으로 연기를 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면서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가장 정상인 캐릭터를 연기하면 되겠단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강표를 통해 현실과 꿈 사이의 균형을 탐구했다. 정경호는 “아침에 인터뷰 장소 근처에서 산책을 하는데 4대째 칼국수집이 있더라. 내가 저기 태어났으면 이어받았을까 생각했다.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보스를 안 물려받고 나만의 길을 가는 것도 맞고, 물려받는 것도 맞다고 생각한다”며 “확실한 책임감이 있으면 내 선택이 타당성을 갖는 것 같다. 강표는 정말로 자기의 꿈을 찾아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인물로 표현하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번 작품에서 명연기로 인정받는 조우진, 박지환과 긴밀한 호흡을 맞췄다. 정경호는 “두 분 다 진짜 언젠가는 해보고 싶었다. 박지환과는 어느 쫑파티에서 만나 ‘언젠가 꼭 작품을 하자’고 약속을 했다. 제가 가장 마지막에 캐스팅 제안이 왔는데,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당연히 하겠다고 했다”라고 웃었다.
5~6개월간 부산 로케이션을 진행하며 세 배우는 진짜 형제처럼 지냈다. 정경호는 “하루에 야식까지 4∼5끼 먹고 숙소도 같았다”며 “얼굴을 보면 뭉클하고 애틋한 마음이다. 사실 촬영을 하면서 힘들었다. 코미디 장르가 어렵다. 촬영하는 사람들끼리만 재밌으면 위험하다. 연기 합을 맞추려고 우리가 더 이야기하고 더 같이 지냈다”라며 말했다.
코미디 연기에 대해서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보스를 찍으면서 두 사람에게 유동적이고 살아있는 느낌을 많이 배웠다”라며 “철저한 계산이 있어야 현장에서 자유롭게 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장성을 배운 느낌”이라고 말했다.
압구정(2022) 이후 3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모습에 기쁨은 더 컸다. 정경호의 아버지는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 내 남자의 여자, 무자식 상팔자 등을 연출한 정을영 PD다. 그는 “오랜만에 개봉하니 아버지가 설레하시더라. 버스와 지하철에 붙은 홍보물 사진을 찍어 보내주신다. 돈 내고 보신다며 VIP 시사는 안 오신다고 하셨다”라고 말했다.

40대 중반 배우로서의 계획을 밝혔다. 그는 “일단은 몸과 머리가 건강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많이 지쳐 있어 건강을 챙기려고 한다. 책도 보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디. 인간 정경호로서 가족들과 여행 가고 싶고, 효도하고 싶다”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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