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랭킹 1426위까지 떨어진 1988년생 베테랑, 이일희의 찬란한 도전이 값진 준우승으로 마무리됐다.
이일희는 9일 미국 뉴저지주 갤러웨이의 시뷰 베이 코스(파71)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숍라이트 LPGA 클래식(총상금 175만달러·약 24억원)에서 최종합계 14언더파 199타로 1위 제니퍼 컵초(미국·15언더파 198타)에게 한 타 차로 밀린 준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에 LPGA 무대에 발을 들인 그가 2014년 11월 미즈노 클래식 공동 2위 이후 11년 만에 맛본 준우승이다. 톱10 등극 또한 2016년 9월 레인우드 클래식 공동 9위 이후 약 9년 만이다. 사흘 내내 60대 타수를 써내는 날카로운 샷감으로 빚어낸 극적인 반등이었다.
굴곡진 커리어를 보내왔다. 2013년 퓨어실크-바하마 클래식에서 생애 첫 우승을 맛봤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어깨 부상과 부진이 겹치면서 추락했고, 결국 2018년 투어 시드를 잃었다. 이후 투어 우승자 출신에게 주어지는 연간 1~2차례 출전 기회를 통해 간간이 모습을 비춘 게 전부였다. 16년 차를 맞은 그가 이번 대회에서야 통산 200번째 출전을 채운 배경이다. 올해로만 한정하면 US여자오픈(컷 탈락)에 이은 2번째 대회였다. 이 기간 세계랭킹도 1426위까지 떨어지면서 긴 아픔의 시기를 보냈다.
이번 숍라이트 LPGA 클래식이 반전 스토리 그 자체였던 셈. 2라운드까지 선전으로 단독 선두에 올라 12년 만의 우승을 노렸다. 이날 최종 3라운드까지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전반에만 보기 3개가 터져 10위 밖으로 밀리기도 했지만, 맹렬한 버디 적립으로 컵초를 쫓았다. 14번 홀(파4) 버디와 함께 간격을 1타 차이로 좁혔으며 최종 18번(파5) 홀에서는 투온으로 이글 퍼트 기회를 맞아 일발 역전까지 바라봤다. 하지만 이 한방이 아쉽게 빗나가며 뒤집기 우승에는 닿지 못했다.

이미 박수 받기 충분한 성적표다. 이일희는 현지 인터뷰를 통해 “초반 1~3번 홀까지 다소 긴장했지만 그게 다였고, 똑같이 경기했다”며 “긴장 탓인지 몸이 조금 떨려서 하체를 더 움직이려고 했다. 빨리 극복했고, 마무리도 꽤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대회를 돌아봤다.
다사다난했던 지난날도 되돌아봤다. 그는 “미국에 오기 전 대학교 3학년이라 학업을 마쳐야 했다. 지난해 학사 학위를 땄다. 돈을 벌기 위해 ‘파이낸셜 포럼’이라는 곳에서 100일 정도 일하기도 했다”며 “그곳을 나와 ‘나 골프 잘하지’라고 깨닫고 골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고 거기에 완전히 빠졌다. 로스앤젤레스에 날 기다리는 제자가 있어서 그들을 보러 가야 한다”고 미소지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메시지를 보내줬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영감을 줬는지에 대한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인 신지애도 ‘넌 내게 영감을 줬어’라고 하더라”라면서 “모든 사람이 골프를 즐기기를 바란다. 그게 제가 바라는 전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랭킹 대폭 상승은 물론 풍성해질 출전 기회까지 예약한 이일희다. 그는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 만약 있다면 내가 원하는 대회를 고를 수 있게 된 것 정도”라며 “다음주 마이어 클래식에 갈까 생각했지만 놓치는 바람에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밝은 미소를 띄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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