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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왕국이었다”…고 최숙현 동료들의 목소리

입력 : 2020-07-06 13:22:19 수정 : 2020-07-06 18: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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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여의도 최원영 기자] 모두가 가해자였다.

 

고 최숙현 선수와 경주시청에서 함께 지낸 동료 선수들이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국회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감독과 팀 닥터, 주장의 가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폭로했다.

 

이들은 “억울하고 외로웠던 숙현이의 진실을 밝히고자 이 자리에 섰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은 감독과 특정 선수만의 왕국이었다”며 “폐쇄적이고 은밀하게, 상습적인 폭력과 폭언이 당연시됐다”고 입을 열었다. 준비해온 입장문을 천천히 읽었다. 덤덤하려 애쓰던 목소리는 중간중간 가늘게 떨렸다. 몇 차례 말을 멈추고 다시 입을 떼기를 반복했다.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인 고 최숙현 선수는 지난달 26일 가해자들의 죄를 꼭 밝혀달라는 말만 남긴 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오랫동안 지속된 가혹 행위 때문이었다.

 

동료 선수들이 처벌 1순위로 지목한 이는 경주시청 전 주장 장윤정이다. 한국 여자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따낸 인물이다.

 

선수들은 “팀의 최고참인 주장이 우리를 이간질하며 따돌림 시켰다. 폭행과 폭언으로 지옥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며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사람이 아닌 존재였다”고 호소했다.

 

숙소 생활을 해 24시간 감시가 이어졌다. 훈련 시 실수가 나오면 물병으로 머리를 때렸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선수를 옥상으로 끌고 가 “죽을 거면 혼자 죽어라. 뛰어내려라”라고 협박도 했다. 다른 선수를 시켜 감기몸살로 쉬던 선수를 각목으로 때리라고 지시했다. 한 선수는 “피로골절로 운동을 못 하는 상황이었다. 주장이 꼴 보기 싫다며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하더라. 잠자는 시간 외에는 종일 웨이트 트레이닝장이나 창고에 숨어 지냈다”고 했다. 다른 선수는 “주장이 숙현 언니를 정신병자 취급했다. 언니가 팀 닥터에게 맞고 방에서 혼자 휴대폰을 보며 울 때도 쇼하는 거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김규봉 감독의 만행도 언급했다. 이들은 “콜라를 한 잔 마셔서 체중이 불었다며 빵 20만 원어치를 억지로 먹게 했다. 새벽까지 먹고 토하는 과정을 반복했다”며 “견과류를 먹었다는 이유로 벽으로 밀쳤다. 머리와 뺨, 가슴을 때렸다”고 말했다. 이어 “감독과 팀 닥터가 술 마시는 자리에 불려가서 맞았다. 숙현이는 이미 맞으면서 잘못했다고 울며 빌고 있었다”고 전했다.

 

금전적인 착취도 있었다. 선수들은 “감독에게 인센티브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국제대회에 나갈 때는 분명 지원금이 나오는데도 우리에게 사비로 80~100만 원가량을 내라고 했다. 주장 명의의 통장으로 입금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팀닥터에 관해서는 “치료를 명분으로 가슴과 허벅지 등을 만졌다.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며 “심리 치료를 받는 숙현 언니에 대해 ‘극한으로 끌고 가 자살하게 만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일찍이 진실을 밝히고 싶었지만 현실에 부딪혔다. 이들은 “경주경찰서 참고인 조사에서 담당 수사관이 숙현 언니가 신고한 내용이 아닌 자극적인 진술은 더 보탤 수 없다며 일부 진술을 삭제했다”며 “처벌도 벌금 2~30만원에 그칠 거라고, 고소할 게 아니면 말하지 말라고 했다. 벌금형에 그치면 가해자를 계속 마주쳐야 해 보복이 두려웠다”고 설명했다.

 

고 최숙현 선수를 포함한 피해자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경주시청에 입단했다. 맞는 것도 참아야 하는 것도 당연한 줄 알았다. 선수들은 “너무 무서웠지만 이게 운동선수의 사회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두려움 때문에 숙현 언니와 함께 용기 내어 고소하지 못했다. 언니와 유가족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용서를 구해야 하는 이는 피해자가 아니다. 가해자다.

 

yeong@sportsworldi.com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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