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 햇살을 피해 한가로이 여유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꼭 패션 모델 같다. 훤칠한 키에 센스 있게 차려입은 옷, 그리고 미모까지 한눈에 확 들어왔다. “은퇴하고 좀 한가하시죠”라는 인사에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몸이 두개라도 모자라요. 더 바빠요”라고 까르르 웃는다. 바로 ‘미녀 배구 선수’로 명성을 날렸던 한유미(36)다. 지난 시즌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불살랐던 한유미는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하고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스포츠월드가 경기도 수원에서 한유미를 만났다.
유소년 지도는 의외였다. 한유미는 “사실 지도자 생각은 ‘1’도 없었다. 힘들게 선수 생활을 하다 보니 질렸다고 해야 할까, 은퇴하면 배구는 보지도 않고 살려고 했다”고 웃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었다. 한유미는 “2012 런던올림픽 대표팀 시절에 웜업존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밖에서 경기를 보니 코트에서 볼 수 없는 부분이 보이더라”며 “그러다 당시 세터였던 이숙자 언니에게 ‘이 공격을 써봐’하고 사인을 보냈다. 마침 숙자 언니가 그걸 보고 시도했는데, 그게 먹혔다. 짜릿했다. 코트 밖에서도 안에 있는 것처럼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지도자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한유미는 꾸준히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리더십에 관한 책을 읽었고 영어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배구 강습에 관한 해외 영상도 수없이 돌려봤다. 은퇴를 번복하고 코트에 돌아온 것도 같은 이유이다. 한유미는 “나는 배구 덕분에 복 받은 사람이다. 배구를 통해 받은 사랑을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지도자가 되려는 것도 그중에 하나"라고 전했다. 이어 "물론 내 꿈의 가장 우선은 ‘나’다. 누구나 나를 위해 살지 않나"라며 웃음바다로 만든 뒤 "그 안에서 한국 배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그것이 지도자였다”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코트에서 투혼을 보여줬던 한유미는 “지도자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선수 생활을 하니깐 모든 것이 달라 보이더라”며 “이도희 감독님(현대건설)에 부임하신 후로 ‘여자 감독’에 대한 목표가 더 뚜렷해졌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최종 목표는 국가대표팀 여성 감독이다”고 눈빛을 번뜩였다.
애초 한유미는 다가올 가을 코보컵을 통해 해설위원으로 데뷔할 예정이었다. 이번 VNL 해설은 갑자기 이뤄진 일. 그래서 더 분주했다. 한유미는 “객원 해설을 리우올림픽때 했었다. 최근 그 영상을 봤는데, 정말 해설을 너무 못하더라”고 웃었다. 이어 “이숙자, 김사니 해설위원이 너무 잘한다. 본격적으로 해설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배운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며 “해설위원 역시 경기를 예측하고, 분석하고, 쉽게 정리해야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 역시 지도자가 되는 데 필요한 능력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고 웃었다.
▲연애? 마음은 열려있지만, 사람이 없다=한국 나이로 서른일곱. 한유미는 “당연히 결혼을 하고 싶고, 마음의 문도 열려 있다”고 웃었다. 그러나 이내 “나는 혼자서 척척 잘하는 스타일이다. 한 번은 전 남자친구가 ‘나보다 배구가 우선이냐’ ‘내 도움이 필요하긴 하냐’고 묻더라. 솔직히 배구가 우선이었고, 혼자 알아서 잘하니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며 “내가 생각해도 문제가 있지만, 그걸 바꾸면서까지 연애를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일에 대한 생각이 많다. 이런 나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연애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수줍게 웃었다.
young0708@sportsworldi.com 사진 김용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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