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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손예진 전성시대

입력 : 2018-04-09 13:56:18 수정 : 2018-04-09 13: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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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 전성시대다. 이견이 나오기가 힘들다. 무척이나 보기 힘든 광경, 즉 영화와 TV드라마 양 매체에서 동시에 대성과를 보여주며 이를 증명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지난 3월30일부터 방송된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다. 꾸준히 시청률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 7일 4회 차에선 4.8%(AGB닐슨)까지 올랐다. 종편 드라마 역대 최고시청률을 기록한 지난해 JTBC ‘품위있는 그녀’ 동회 시청률 3.3%보다도 순조롭다. ‘품위있는 그녀’는 마지막 20회에서 12.1%란 종편 최고기록을 달성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이를 경신할 수도 있으리란 기대가 부풀어 오르고 있다.

한편 그보다 보름 빠른 3월14일 대중과 만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개봉 26일 차인 지난 8일 드디어 250만 관객을 돌파했다. 8일 현재까지 252만5690명을 동원했고, 아직도 일일순위 5위를 지키고 있어 향후 20~30만 이상 추가동원도 무난하리란 예상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손익분기점은 150만이었다. 실수익 차원에선 웬만한 블록버스터 못지않다. 이쯤 되면 이런 식 매체를 넘나드는 동시성공 사례가 과연 과거에 또 있었는지 싶다.

그런데 이처럼 특이한 현상도 손예진이란 이름이 전제되고 나면 딱히 어색해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손예진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많다. 고리타분하지만, ‘흥행보증수표’란 수식어가 데뷔 이래 늘 따라다녔다. 곧 ‘중박의 여왕’ ‘손익분기의 여신’이란 표현도 생겨났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손예진은 국내 여배우들 중 ‘출루율’ 측면에선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 견고함을 보여줘 온 배우이기 때문이다. 아니, 남녀배우 통틀어서도 그 위상이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다.

먼저 영화에선 2002년 ‘연애소설’부터 ‘지금 만나러 갑니다’까지 주연급 출연작 17편 중 국내 손익분기에 이르지 못한 영화는 단 4편에 불과하다. 그중 ‘외출’과 ‘나쁜놈은 죽는다’는 해외수익으로 손익분기 이상이 떨어진 경우다. 그럼 17년간 17편 중 손익분기를 못 맞춘 영화는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와 ‘비밀은 없다’ 단 두 편뿐이란 얘기다. 출루율 88%다. 그리고 17편 주연작 편당 평균 관객 수는 현재까지 약 244만 명 선이다. 이른바 ‘평균 버프’를 만들어주는 1000만 영화 한 편 없이 나온 결과다. 그런 점에서 더더욱 보증수표다.
 
TV드라마도 마찬가지다. 2001년 MBC ‘맛있는 청혼’ 이래 어찌됐건 출연작 시청률이 10% 이하로 떨어져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망작 소리 듣던 KBS2 ‘상어’마저도 마지막 회에서 10.7%는 올렸다. 첫 케이블 드라마인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경우 매체 특성상 기준점이 다르긴 하겠지만, 그 기준점 하에서라면 사실상 이미 성공이다. 1, 2주 내로 큰 화제를 모았던 JTBC ‘밀회’의 5.4% 정도는 가볍게 능가할 전망이다.
그럼 이제 궁금한 지점은 하나로 모인다. 손예진은 대체 어떻게 흥행보증수표, 중박의 여왕, 손익분기의 여신이 됐느냐는 점이다. 당장 손예진과 비슷한 시기 커리어를 시작한 여배우들 중 이렇게까지 메인스트림 정점에서 장수하는 이도 거의 없다. 굳이 꼽자면 전지현 정도를 더 들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전지현은 손예진과 달리 대표적인 과작배우다. 거기다 이벤트성 블록버스터에도 자주 출연한다. 굳이 말하자면 손예진과는 정반대 노선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역시 여배우로선 흔치 않게 20대 초반부터 30대 후반까지 최정상급에서 내려오질 않는 스타란 점에서, 그와의 비교를 통해 장수비결의 공통된 핵심 정돈 추론해볼 수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손예진과 전지현은 둘 다 어느 시점부턴 그 반응층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넘어간 스타란 점이 있다. 조건도 그렇고, 커리어 행보 역시 의도건 아니건 사실상 그에 맞춰 진행된 측면이 있다. 그리고 이는 실질적으로 한국대중문화시장에서 여배우들의 궁극적 장수 노선이라 볼 수 있다. 20대 여성에 관심이 집중된 남성 소비층 구미에만 맞추다 보면 당연히 그 시점을 넘긴 뒤론 동력이 떨어진다. 적어도 유료매체 티켓파워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안방극장, 그것도 중장년층 대상 드라마로 향하는 패턴이 된다. 커리어 동력은 폭발성 강한 남성층 지지로부터 시작했어도, 일정시점이 지나면 어떻게든 보다 안정적인 여성층으로 주 소비층을 옮기는 게 관건이 된다. 그 조건과 행보를 살펴보자.

먼저, 어찌됐건 시대의 전형이라 할 만한 미모로 초반 남성층 관심을 집중시킨 여배우들이 유리하긴 하다. 당연히 20대 커리어 초반엔 여성들로부터 반응이 신통치 않다. 안티가 형성되는 경우도 많다. 손예진과 전지현 모두 겪은 일이고, 특히 손예진 쪽이 심했다. 그러나 30대로 넘어가고 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남성층 관심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젊은 여성층으로부터 동경심리가 치솟는다.

결국 젊은 여성층이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높은 평가를 내리는 건 젊을 적 빛나는 미모보다 당연히 찾아올 노화과정에서 미모를 잃지 않는 모습 쪽이라 볼 수 있다. 남성보다 노화에 대한 불안감이 상대적으로 강한 여성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럴 땐 ‘개성적인 외모’를 지닌 여배우들보다 ‘시대의 전형’급 외모일 때 그 호감도가 더 빛을 발한다. 오히려 개성적 외모를 지닌 여배우들에 대한 여성 소비층 호감도는 그가 20대 젊은 시절일 때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온다. 동세대일 땐 자신을 반영해주는 스타, 윗세대일 땐 자신의 동경대상인 스타를 선호한다는 심리다. 티켓파워도 그런 노선에서 발동된다.

물론 이렇게 ‘조건’만 갖췄다고 모두 손예진, 전지현처럼 초장기 티켓파워가 나오는 건 아니다. 따지고 보면 비슷한 조건 하에서도 그에 미치지 못하고 사라진 여배우들 많다. 손예진과 전지현이 다른 점은 자신이 출연하는 콘텐츠의 성격, 그리고 콘텐츠 내에서 맡는 ‘역할’에 변화를 줬단 점이다.

지금은 상당부분 잊힌 감이 있지만, 사실 손예진은 데뷔 초기 여성층이 가장 싫어하는 캐릭터 중 하나였다. 사람 자체가 그렇다기보다 콘텐츠에서 맡는 역할이 그렇기에 배우 개인 이미지로 전이된 순서다. 일명 ‘병약미소녀’ 계열이었고, ‘비만 맞아도 앓아눕는 미소녀’ 역할이 초기 커리어를 장식했다. 당연히 남성층 보호심리를 자극해 남성층으로부터의 지지는 엄청났고, 그 탓에 체감인기도는 상당히 높았지만, 오래 가지 못할 콘셉트인 건 자명했다.

여기서 일단 제동을 걸어주고 새로운 노선을 보여준 게 2005년 작 ‘작업의 정석’이었다. 지금은 딱히 기억되지 않지만, 손예진 커리어 전체로 봐선 큰 역할을 한 전환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작업의 정석’에서 손예진은 소악마적 캐릭터, 즉 연애작업의 ‘선수’로 나온다. 충분히 속물적이고 충분히 계산적이며 순수 노선에서 180도 벗어난 캐릭터다. 이런 캐릭터도 나름 섹시해 보인다는 판단에 남성층으로부터도 반응이 나쁘진 않았지만, 특히 여성층으로부터 반응이 뜨거웠다. 내숭 계열 미소녀 캐릭터를 혐오하는 만큼, 아예 속 내놓고 속물근성과 위선을 드러내는 소악마 캐릭터에 해방감을 느끼는 측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캐릭터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여성층으로부터 인기가 많다. 옆 나라 일본에서도 여배우 이사하라 사토미의 전환점이 된 계기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전까진 금방 사라질 듯한 배우로 꼽히기도 했지만, 2014년 후지TV 드라마 ‘실연 쇼콜라티에’에서 극단적인 소악마 캐릭터를 연기하며 여성층으로부터 반응이 폭등했다. 현재는 일본서 가장 인기 있는 여배우 다섯 손가락 안에 안정적으로 꼽힐 정도로 자리를 굳혔다. 특히 여성층 지지도가 높아 더 안정적이란 평가도 나온다.

어찌됐건 이후 손예진은 그보다 더 소악마적인 캐릭터를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한 번 더 소화했고, 그 역할로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했다. ‘아내가 결혼했다’의 주인아 캐릭터는 남성층 입장에선 가히 공포의 대상에 가까울 정도 극단적 면모였다. 그렇게 남성층 구미에서 벗어난 모습을 과시하며 20대를 마무리한 뒤 손예진은 확실히 여성층으로부터 호감형에 가까워졌고, TV드라마 등을 통해 이상적 전문직 여성상도 보여주며 이미지 폭을 넓혀갔다. 거기서부턴 이미지 전환을 위해 다시 병약형 캐릭터를 넘나들어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소비층을 그렇게 교체시키며 설득에 성공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전지현도 이와 유사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뚜렷한 침체기가 없었던 손예진에 비해 전지현은 커리어 하강을 꽤 격렬하게 보냈다. 2006년 작 ‘데이지’부터 2012년 ‘도둑들’ 직전까진 하강을 넘어 ‘끝났다’고까지 평가되곤 했다. 그러다 30대를 넘어 가정을 갖고 난 뒤 ‘도둑들’을 통해 다시 대표작 ‘엽기적인 그녀’에서 보여줬던 ‘엽기적인 언니’로 돌아오자 반응도 정반대로 돌아왔다. 여성층으로부터의 반향이 엄청났다. 이어 여배우로선 좀처럼 시도하지 않는 액션배우의 길을 걸었고, 그렇게 영화 쪽에선 ‘베를린’과 ‘암살’의 연속 대박, TV드라마에서도 ‘엽기적인 언니’로서 SBS ‘별에서 온 그대’와 ‘푸른 바다의 전설’ 대박을 냈다. 모두 소비층을 전환시킨 결과다.

물론 손예진이나 전지현이나 연기력 측면에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온 점이 이 같은 롱런의 기반이 됐단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사실 둘은 생각 외로 동세대 중 연기상을 가장 많이 받은 배우들이다. 손예진은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등 국내 유수영화상을 싹쓸이하다시피 했고, 전지현 역시 대종상 2회 수상 및 TV부문에서 백상예술대상과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기초’는 상당히 불안정했지만, 거기서부터 출발해 꾸준히 연기영역을 넓히며 도전해온 역사가 탄탄한 기반을 마련해줬다.

그러나 역시 ‘연기력’과 ‘인기’는 쉽게 일치하기 어려운 일이다. 초장기 인기의 기반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그 결정적 비결은 앞서 결론내린 대로, 정확히 필요한 시점에 정확한 방향으로 자신의 주 소비층 성(性)을 교체한 절묘한 전략이었다고 봐야 한다.

손예진은 딱 10년 전인 2008년 ‘아내가 결혼했다’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이렇게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요즘 27세의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게 쉽지 않아 고민하고 방황하고 있었는데, 정신 차리라고 이 상을 주신 것 같다.” 한국영화시장에서 30을 바라보는 여배우의 한계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드러나는 멘트였다. 그리고 손예진은 그런 딜레마에 대응하는 탈출전략을 지난 10년에 걸쳐 실험해왔다. 그 결과가 지금이다. 성공을 축하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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