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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77. 안다고 전부 아는 것이 아니다

입력 : 2018-02-04 19:00:06 수정 : 2018-02-04 1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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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전통종교라고 할 수 있는 신사가 약 8만개 있다. 지금의 신사는 종교보다는 전통과 관습을 유지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반면 불교는 일본 내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확보하고 있으면서 일본의 사상을 비롯하여 문화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일본 불교를 세계에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일본은 조상신을 중요시하고 있다.

15년 전 일본 천태종의 초청을 받았을 때 당황했다. 나를 어떻게 알고 있을지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그들은 나에 대해 이미 많은 부분을 조사해 다양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었다. 나를 초청한 사람은 일본 천태종의 대승정이었다. 그는 400년 동안 대대로 천태종 스님을 배출한 가문 출신으로 그의 친척들은 일본의 3대 사찰로 알려진 선광사 주지와 동대사 주지를 역임하고 있었다. 천태종이 일본 종교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중국 천태종의 법맥을 이은 일본 천태종은 센다이종이라 하여 천황 가문을 지켜주는 종교적 역할을 하고 있다.

철저한 민족적 보수주의 진영이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일본을 지키는 국가 종교 역할을 천태종이 맡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한국 불교의 역할과 매우 흡사하다 하겠다. 그러나 여느 국가의 종교처럼 일본의 천태종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전국시대인 1571년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천태종의 본산이 위치한 히에이산에 불을 놓아 승려와 사찰을 모두 불태웠다. 그런 수난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 천태종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변함없이 일본인의 신심을 얻고 있다.

일본에서 만난 대승정의 첫인상은 인자함 그 자체였다. 승려로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는 지극히 겸손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분으로 한국 불교계의 총무원장과도 같은 사무국장을 두 번이나 역임한 천태종 승려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다.

그가 나를 초청해 “구명시식을 받고 싶다”고 했을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일본 천태종의 대승정이 구명시식을 받는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후쿠오카의 오다이찌(영산사)에서 조용히 칩거하며 참선수행을 하고 있는 그가 구명시식을 청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승려로서 살아온 지난 세월동안 자신이 알지 못한 답답함과 한을 구명시식으로 풀어보고자 했던 것. 이미 승려로서 여러 자리를 역임하였고 현재 대승정이라는 막중한 책임자의 위치에서 정신적 지도자로 살고 있는 그에게도 영계의 메시지는 끊임없는 화두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사코 후암선원에서 구명시식을 올리길 원했다. “법사님, 도에는 출장이 없습니다. 제가 한국으로 가서 직접 구명시식을 받겠습니다. 출장 구명시식을 하시는 것은 도에 어긋나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의 호의에도 걱정이 앞섰다. 구명시식은 우리의 살풀이춤과 노래가 불리는데 어떻게 일본영가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제가 일본 노래와 춤을 추는 분들을 초청할까요? 구명시식은 한국식이라 일본영가들이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그는 “일본영가들에겐 일본 춤과 노래가 우선이겠지만 그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혼들을 천도해주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니까요.”

대승정의 위치에 있어도 스스로 풀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안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가 종교적으로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승정을 위한 구명시식이 끝나고 그는 나에게 감사의 표시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사람을 소개해주었고, 그를 통해 과거 영친왕이 일본에 있을 때 찍은 사진앨범을 선물로 받았다. 귀신은 공짜 밥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우쳐준 사건이었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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