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수사관이 찾아온 적이 있다. 지금은 자영업을 하고 있는 그는 현직에 있을 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 있는 경제 전문 수사관이었다. 가정도 안정적이고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말하는데 그의 안색은 그리 편해 보이지 않았다. 파리한 낯빛이라 무슨 큰 병이라도 걸린 듯 보였다. 그의 병명은 다름 아닌 ‘신경쇠약’이었다.
“지금까지 저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경찰로 근무할 때나 정년퇴직한 후에도 법대로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양심에 걸리는 일은 추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밤만 되면 누군가가 내 가슴을 꽉 누르는 것 같아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병원에서는 단지 신경쇠약이라고는 하는데...”
최근에는 신경쇠약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참선에 심취해 있다는 그는 자신의 병이 ‘영혼세계’와 연관된 것은 아닌가하여 나를 찾았다고 고백했다. 그와 대화를 하면서 나 역시 같은 생각이기에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구명시식을 올리기로 했다.
구명시식을 하다보면 간혹 모르는 영가들이 나타난다. 그의 구명시식에도 초혼하지도 않은 영가 두 분이 나타나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초혼하지 않은 영가 두 분이 오셨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자신도 당황했던지 “혹시 금융계 간부였던 분과 부동산 영감님이 아니십니까?”라고 묻더니 “오늘 그 분들이 오실 줄 알았습니다. 늘 죄스러운 마음이 있었거든요”라고 말했다.
사연인즉 이러했다. 1970년대 그가 경제담당 수사관이었을 때 사건에 연루된 금융계 간부가 토요일에 취조를 받으러 경찰서로 왔다고 한다. 그는 토요일에 취조를 받으면 제대로 쉬지도 못할 것 같아 나름 선처하는 마음에 ‘월요일에 다시 오라’고 했는데 그 간부는 ‘뭔가 크게 걸려들었다’고 오해를 하고 귀가 도중 한강에 몸을 던져 투신자살을 한 것이다.
“저는 잘 봐주려고 돌려보낸 것인데 그 분은 지나친 강박관념으로 이를 견디지 못하고 한강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는데 그땐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의 말에 물귀신 영가의 억울함은 풀어졌지만 이번에는 부동산영감님 영가가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저 놈이 날 죽였어!” 하지만 이 역시 오해로 빚어진 사고였다. 강남 개발로 부동산투기 붐이 불어 투기꾼들을 잡아들일 때 그는 투기 지역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영감님을 찾아갔다. 단지 수사에 필요한 협조를 요청하러 갔을 뿐이었는데 그가 내민 신분증을 본 영감님이 그만 겁에 질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부동산영감님 영가에게도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는 “단지 가슴에 묻어놨을 뿐인데 영가들이 진짜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영가들이 나한테 쌓인 게 있었으니 제 몸이 이렇게 망가진 것도 당연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는 경제수사관으로서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상대방을 죽음에 이르게 한 업을 진 것이다. 나는 ‘저 사람 때문에 죽었다’며 앙심을 품고 있던 영가들을 잘 설득해 화해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오래도록 가슴을 무겁게 누르던 죄의식을 털어버린 그는 큰 짐을 벗었다며 가벼운 걸음으로 돌아갔다. 살다보면 선한 마음을 가져도 때로는 의도하지 않은 그늘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작업취사라 하지 않던가.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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