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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더 유닛 vs 믹스나인', 콘셉트가 성패 갈랐다

입력 : 2017-10-30 10:47:49 수정 : 2017-10-30 10:4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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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또 다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가득 찼다. KBS2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더 유닛’과 JTBC ‘믹스나인’, 그리고 M.net의 ‘스트레이 키즈’가 불과 1~2주 사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한 상태다. 이 중 실질적 경쟁관계인 ‘더 유닛’과 ‘믹스나인’ 향방에 대중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스트레이 키즈’ 경우 사실상 아이돌 리얼리티 예능에 가까운 ‘무늬만 오디션’ 프로그램이기에 그렇다. 시장에서 전혀 다른 역할로 기능할 콘셉트다. 예외다.

그렇게 경쟁 중심인 ‘더 유닛’과 ‘믹스나인’ 둘만 놓고 봤을 때, 일단 시청률 차원에선 지상파와 케이블 간극을 감안, 둘 다 긍정적 초기반응이 나왔다. ‘더 유닛’은 1, 2화 연속방송으로 2화가 6.2%(AGB 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직전까지 동시간대 방송되던 ‘배틀트립’ 근래 시청률 평균에 비해 2~2.5%p 더 나온 셈이다. 한편 ‘믹스나인’ 1화는 1.9% 시청률을 보였다. M.net ‘프로듀스 101’ 시즌1 첫 화가 1.0%, 시즌2 첫 화가 1.6%였음을 돌이켜보면 이 역시도 향상된 시청률이 맞다.

그러나 향후 판도를 좌우할 프로그램의 만듦새 차원에선 차이가 크다. 단연코 ‘믹스나인’ 압승이다. ‘더 유닛’의 문제는 너무 명확하다. ‘편집’이란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만듦새가 형편없다. 아예 기본적인 노하우 차원 의구심까지 대두되는 수준이다. 반면 ‘믹스나인’은 ‘프로듀스 101’ ‘언프리티 랩스타’ 등 화려한 이력을 지닌 한동철 PD 역량 덕택에 기본기 정도는 제대로 밟고 있다. 물론 전작들과 비교해 이렇다 할 진일보 요소는 없다. 그러나 그 정도라도 안정적 패턴이 착실히 장착돼있다는 것 자체가 강점이다. ‘진부함’이란 단어가 ‘안정감’으로 읽힐 수도 있단 점을 새삼 일깨워준다. ‘더 유닛’과의 비교에 있어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여기서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두 프로그램은 엄밀히 말해 1화가 방송되기 전, 프로그램 콘셉트 차원에서부터도 이미 장기적 성패를 가늠할 만한 부분이 있었단 점이다. 애초 유사상품 논란이 일 정도로 기획 당시 말들이 많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둘은 서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를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28일 방송을 시작한 ‘더 유닛’부터다. 애초 기획 의도는 ‘기존 데뷔한 아이돌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재기 오디션’이었다. 한 마디로 중고아이돌 재생 프로젝트다. 그래서 아예 ‘리부팅’이란 단어를 내걸고 등장했다. 그런데 진행과정에서 웬일인지 데뷔 경험 없는 연습생이나 아이돌과 관계없던 연기자, 데뷔한지 몇 달 안 된 신생 팀들까지 참여시켰다. 그러다보니 기획 의도도 “전․현직 아이돌 전체를 대상으로 그들의 가치와 잠재력을 재조명함으로써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닛으로 재탄생할 기회를 주고자 한다.”는 식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냥 ‘방송이 아이돌 유닛을 만들어준다’는 흔한 콘셉트 외엔 의미가 남지 않게 됐다.

다음은 29일 시작된 ‘믹스나인’이다. 원체 두루 뭉실한 콘셉트로 홍보된 탓에 감을 잡기 어려웠지만, 어찌됐건 YG엔터테인먼트 수장 양현석이 수십 군데 기획사들을 돌아다니며 쓸 만한 인재를 선택, 프로그램에 출연시켜 경쟁시키면서 남녀 한 팀씩 유닛을 만든 뒤 둘 중 한 팀만 데뷔시키겠단 기획이다. 결국 ‘믹스나인’ 역시 기존 데뷔한 아이돌 및 연습생, 타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 방향이 잡혀, 인적구성 면에선 ‘더 유닛’과 별 차이 없어졌다. ‘더 유닛’ 쪽이 좀 더 중고아이돌 비중이 높을 뿐이다.

이처럼 액면 그대론 그저 프로그램이 각 기획사를 직접 찾아가느냐 접수처에 앉아서 받느냐 정도 차이지만, 기획 청사진 상으론 좀 더 섬세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더 유닛’이 참가자 ‘개인’의 리부팅에 방점이 찍혔다면, ‘믹스나인’은 ‘중소기획사 한계’에 부딪힌 개인의 문제를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YG엔터테인먼트가 대신 뚫어주겠단 의도로 읽힌다. 별 차이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사실 이 부분이 크다. 두 프로그램을 가르는 기준으로서 뿐만 아니라, 현 아이돌산업 생태계 자체를 진단하는 단초로서도 그렇다.

‘더 유닛’이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아이돌 리부팅’ 개념을 생각해보자. ‘더 유닛’은 그 바탕이 된 중고아이돌 상황을 너무나도 큰 문제인 것처럼 여긴다. 개인에게 있어 극복 못할 악재이자, 확대일로의 한국 아이돌산업이 낳은 병폐이기라도 한 것처럼 다룬다. 그러다보니 이 같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공영방송이 나선다는 식 콘셉트가 마련된다. 그런데 사실 아이돌산업에서 이런 일은 아주 흔하다. 그리고 병폐라 여겨질 여지조차 딱히 없다. 지금 뜬 아이돌 중 상당수가 애초 ‘중고아이돌’이어본 경험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영방송이 나서 해결해준다는 발상도 어색한 상황이다. 민간에서 알아서 잘 해결되고 있으며, 그 이전, 이게 과연 도움이 필요한 문제인지부터가 애매하단 입장이다.

당장 ‘더 유닛’ 심사위원 중심에 선 가수 비부터가 그렇다. 방송에도 등장하듯, 그 역시 1990년대 후반 실패한 보이그룹인 팬클럽 출신이다. 또 다른 심사위원 현아도 마찬가지다. 걸그룹 원더걸스를 탈퇴한 후 그 역시 중고아이돌 입장을 겪었다. 그러다 포미닛에 들어간 뒤 성공가도를 달려 솔로로까지 이어지는 대박을 거뒀다. 비단 심사위원들 상황만도 아니다. 드라마를 만들어가야 할 참가자들 차원에서도 같다. 1화에서 화제가 된 걸그룹 스피카 출신 양지원이 대표적이다. 오소녀란 이름의 실패한 걸그룹 출신 중 유일하게 못 떴다는 점이 늘 언급된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말하면, 나머지 오소녀 출신들은 중고아이돌이었음에도 성공하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단 얘기도 된다.

이처럼 ‘더 유닛’은 전반적으로 업계 분위기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이해할 생각 자체가 없는 상태에서 프로그램을 론칭해버렸단 인상이 강하다. 개개인 역량으로 얼마든 극복 가능한 중고아이돌 상황을 일반기업 퇴사자들의 경력단절 문제 등과 같은 것으로 치부해버린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현실에 대한 오독이자, 심하면, 고의적 왜곡이다.

‘믹스나인’은 다르다. 실제 업계 수장이 기획하고 투입된 프로그램인 만큼 이 같은 중고아이돌 문제를 딱히 심각하게 보질 않는다. 심사를 맡은 양현석 눈엔 이미 데뷔했던 중고아이돌이나 데뷔 안 한 연습생이나 다 ‘거기서 거기’다. 쉽게 말해, ‘못 떴으면 신인이나 마찬가지’다. 그게 시장 현실이다. 오히려 그보단 ‘나이’ 문제가 더 심각하며, 거기서부터 아이돌산업 러브콜을 받을 수 있냐 아니냐가 결정되기 십상이다. ‘타임 리미트’ 문제일 뿐이란 얘기다.

그런 점에서 ‘믹스나인’이 정작 짚고 있는 문제는 사실상 현 아이돌산업 상황 핵심을 찌르는 부분이 된다. 산업 팽창으로 인해 우후죽순 늘어나버린 중소기획사들 문제다. 기획사 숫자로만 보면 시장에서 수용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버린 지 오래다. 그래도 계속 늘어난다. 한류가 확대일로에 있어 시장 자체는 더 커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류를 맛볼 지점까지 가려면 일단 국내시장부터 다져놓아야 한다는 절대원칙이 존재한다. 그리고 국내시장 파이는 그간 이렇다하게 늘어난 구석이 없다. 이처럼 소위 ‘가진 자들의 게임’에 발 들여놓은 중소기획사들 문제가 ‘믹스나인’엔 구석구석 배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믹스나인’이 보여주는 씁쓸한 콘셉트도 다시금 부각된다.

양현석이 이런저런 중소기획사들, 심지어 강화도 산골짝에 자리 잡은 기획사까지 찾아다니며 인재를 발굴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대기업의 중소기업 ‘인재 빼가기’ 현장처럼 보인다. 연습생들은 하나 같이 YG엔터테인먼트란 대기업에 뽑혀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일반기업 인재 빼가기와 다른 점은, 사실상 중소기획사 대표들까지도 그걸 바라고 있단 점이다. 아직 구체적 데뷔 방침이 나온 건 아니지만, 한시적 프로젝트‘일 수도 있다’는 기대 하에 YG엔터테인먼트로 보내 인지도를 높인 참가자들이 금의환향할 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YG엔터테인먼트 측 입장이 바뀐다면 문제가 발생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그 외엔 별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간 묵혀두기만 했던 연습생들 미래에 대한 책임감 차원에서라도 오케이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의외로 상당히 잔혹한 콘셉트인 셈이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고 보면, 현 아이돌산업 상황 자체가 그렇다.

이처럼 콘셉트 상으로만 봤을 때도 이미 ‘더 유닛’과 ‘믹스나인’은 성패가 갈라졌다. 업계 사정을 잘 모르는 일반인 입장에서 어림짐작으로 바라본 듯한 콘셉트와 업계 속성과 한계를 정확히 꿰고 있는 콘셉트 간 격차다. 같은 ‘절실함’이란 코드더라도 실제 현실과 맞닿는 구석이 있어야 그 효과가 증폭되며 공감을 산다. 그게 아니라면, 앞선 양지원 경우처럼, 아이돌 그만 두고서 녹즙 배달 알바했다는 사연이라도 구구절절 꺼내야 겨우 성립될까 말까다. 사실상 ‘인간극장’과 별 차이가 없어진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같은 인물들의 ‘인간극장’을 일주일에 2화씩 28화, 석 달 반 동안이나 봐야한단 점이다.

물론 KBS 측에서도 할 말은 있을지 모른다. 어찌됐건 여타 케이블방송에선 보기 힘든 ‘착한 오디션’ 프로그램 아니냐는 것이다. 공영방송 가치에 준하는 ‘돕기’형 프로그램, 자극성 없는 오디션 프로그램 하나 나오는 것도 의미 있는 일 아니겠냐는 것. 그런데 그 ‘착한 오디션’ 프로그램, 나아가 ‘더 유닛’ 콘셉트 자체부터도, 사실 KBS는 5년 전에 이미 한 번 시도했었다. 2012년 방송된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이다. 기획 의도는 ‘더 유닛’과 거의 모든 면에서 같았다. 한 번 데뷔한 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린 가수들을 재조명하며, 이들을 팀으로 묶어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단 콘셉트였다. 민간, 특히 아이돌시장에선 극히 자연스러운 ‘실패’와 ‘퇴출’ 그리고 ‘재기’란 상황도, 퇴출될 일 없는 준공무원 집단 KBS 입장에선 무시무시한 현실적 벽이자 국가기관이 나서야할 사회적 과제처럼 보이나 보다.

그런데 그렇게 등장한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은 당시 방송계를 휩쓸던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들 중 최초의 대실패 사례가 됐다. 시청률 면에서도 그렇지만, 그 탓에 결과적으로 뽑힌 팀 렌미노는 무관심 속에 앨범 제작부터 무산되고, 아예 방송무대조차 한 번 못 가져본 채 사라져버렸다. ‘실패한 중고신인’ 돕겠다고 나선 KBS가 또 하나의 ‘실패한 중고신인’을 만들어버린 사례였다. 사실 이런 폐해를 스스로 낳은 방송사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또 만들어냈단 점 자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저 ‘착한 오디션’ 개념으로도, 사실 그런 프로그램은 이미 존재한다. 서두에 언급한 ‘스트레이 키즈’다. 1화에서 ‘정황상 누가 봐도 남자 팀이 뽑힐 게 빤한 여자 팀과의 경쟁’을 보여준 게 프로그램 내 경쟁 전부다. 그마저도 내년 즈음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시킬 걸그룹 유력후보들을 미리 선보인단 의미가 훨씬 컸다. 이후부턴 그저 ‘미션 완수’ 정도만을 이어가는 아이돌 리얼리티 예능이나 다를 바 없어졌다. ‘착한 오디션’은 이렇듯 경쟁이 없는 오디션, 사실상 오디션이 아닌 오디션 프로그램뿐이다. 경쟁은 시켜놓고 그 첨예한 갈등묘사는 억누른 연출이라면, ‘착한 오디션’이 아니라 그저 ‘재미없는 오디션’이 될 뿐이다.

그렇게 2017년 4/4분기 오디션 프로그램은 ‘기존 오디션’과 ‘착한 오디션’, 그리고 늘 그랬듯 그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KBS 오디션’으로 나뉜 상태다. 방송 전 KBS 측에선 “셋 중 꼭 봐야 할 하나가 있다면 ‘더 유닛’, 둘 중 하나를 꼽자면 ‘더 유닛’, 딱 하나를 꼽아도 ‘더 유닛’”이라며, 가히 전문MC 가까운 레토릭으로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그런데 이제 막 1화가 다 나간 상황에서, 셋 중 유일하게 그 어떤 의미에서건 존재이유를 알 수 없는 프로그램은 ‘더 유닛’이 됐다. KBS 예능 잔혹사는 끝이 없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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