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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48. 부유한 거지

입력 : 2017-10-22 19:13:27 수정 : 2017-10-22 1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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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남녀 간 사랑의 집착은 불행을 낳고, 돈에 대한 집착은 후회를 낳는다. 그래서 조선의 거상 임상옥은 계영배를 통해 재물에 대한 욕심을 스스로 경계했다. 재물은 잠시 맡았다가 떠날 때 돌려주는 것이라 집착이 탐착이 되면 복이 화가 된다.

젊었을 때 부산에서 잠시 염리사 일을 하였다. 어느 날 “저, 싸게 염을 해주시는 분이 있다면서요?” 하며 누군가 나를 찾아왔다. 속으로 얼마나 형편이 어려웠으면 나를 찾을까 하는 생각에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적어준 주소를 따라 갔더니 뜻밖에도 커다란 기와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당에서 자식들이 싸우고 있었다. 싸우는 이유는 관을 너무 비싼 것으로 맞췄다는 것. 어차피 땅속에 묻힐 건데 싼 걸로 해야 했다며 언성을 높였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구두쇠 집안이니 싼 염리사를 찾았구나”라고 생각했다.

시신이 모셔진 방문을 열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험한 표정을 짓고 눈을 부릅뜬 70대 노인의 시신이 돈 뭉치 속에 파묻혀 있는 게 아닌가. 베개 속에도 이불 속에도 깔고 누운 요 속에도 돈뭉치가 그득했다.

내가 그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니 그 순간 뒤에서 “염리사 양반! 내가 똑똑히 보고 있으니 그 돈은 절대 만지지 마시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노인영가였다. 그는 생전에 돈 많은 목욕탕 주인이었지만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공짜 목욕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던 구두쇠였다고 한다. 죽어서도 모아둔 돈을 두고 갈 수가 없어 유언으로 은행에 있는 재산을 모두 찾아 시신 밑에 깔라고 했다면서 “빈손으로는 절대 이승을 떠날 수 없소!”라고 했다.

노인의 말을 들으니 정말 불쌍하고 한심했다. “영감님, 저는 이 돈 다 준다고 해도 싫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대로 염을 하려면 자세를 바로 해야 하는데 이렇게 두 손에 돈 뭉치를 잡고 계시면 자세가 안 나옵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노인영가가 저승사자와 다투고 있었다. 저승길 재촉에 영감은 “돈을 두고는 못 갑니다!”라고 절규하며 버티는 바람에 저승사자는 할 수 없이 매를 들어 영감을 때리며 끌고 갔다. 그 바람에 시신에 멍이 들기 시작했다. 영가가 끌려간 후에야 돈뭉치를 잡고 있던 손이 풀려 염을 할 수가 있었다. 평생 친구들과 술을 먹으면서 단 한 번도 술값을 내지 않았던 부자였지만 마음이 가난했던 구두쇠영가는 자신은 물론 자식들까지도 돈의 노예로 만들고 비참한 모습으로 이승을 떠났다. 이 이야기는 훗날 연극 ‘오구’의 모티브가 됐다.

또 다른 부자의 이야기다. 부모에게서 수 십 만평의 토지를 상속받아 큰 재산을 갖게 된 부자가 어느 날 갑자기 혈압으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 위급한 상황이었기에 부인은 남편을 대학병원 특실에 입원시켰다. 그런데 15일 만에 정신을 차린 남편이 눈을 뜨자마자 부인에게 “이 병실 얼마짜리요?”라고 했다. “당신 15일 동안 혼수상태에 있었어요. 그깟 병실 값이 중요해요?”라고 부인이 말하자, 그는 “그럼 15일 동안이나 비싼 병실에 있었단 말이오? 당장 싼 방으로 옮겨요”라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두 사람은 재물을 많이 소유했으니 남이 보기에 부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부자라고는 할 수 없다. 수의에 주머니가 없는 이유가 떠날 때는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음을 의미하는데도 죽는 순간까지도 돈을 움켜쥐었고, 위급했던 상황이었는데도 목숨보다 병원비를 먼저 생각했으니 말이다.

세상에 부자는 많다. 하지만 재물의 가치를 아는 부자는 얼마나 될까. 부자가 재물의 가치를 모르면 스스로 마음이 가난해지고 자식은 재물에 탐착하게 된다. 그래서 부자로 죽지 말고 부자로 살라고 하는 것이다. 재물은 소유한 만큼이 아닌, 사는 동안 쓴 만큼이 진정 내 것이라 할 수 있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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