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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송강호는 왜 대체되지 않을까

입력 : 2017-08-29 14:38:32 수정 : 2017-08-29 14:3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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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가 28일 역대 한국영화 흥행 10위권에 들어섰다. 1143만3903명을 끌어 모으며 기존 10위 ‘변호인’의 1137만4871명을 제쳤다. 이로써 ‘송강호가 송강호를 제치는’ 결과가 마련됐다. 당연히 주연배우 송강호로선 더없이 의미 있는 일이다. 그로선 ‘괴물’ ‘변호인’에 이어 벌써 3번째 1000만 영화인데다, 연차를 더해가며 자기 기존 기록을 경신하는 흔치 않은 쾌거도 보여줬다.

좀 더 살펴보자. 일단 지금껏 주연급으로 1000만 영화 3편을 보유한 배우는 송강호가 유일하다. 거기다 1000만 ‘근처까지 간’ 900만 이상 흥행작도 ‘관상’과 ‘설국열차’ 2편이 더 있다. 이런 배우가 없다. 그야말로 ‘송강호 전성시대’다. 더 주목해야 할 건 이 ‘송강호 전성시대’가 바로 지금만도 아니란 점이다. 1997년 ‘넘버 3’에서 인상적인 조역으로 처음 스타덤에 오른 이래 벌써 21년째다. 그런 점에서 사실상 ‘아직도 송강호 전성시대’란 표현이 더 걸맞다. 그 21년 동안 송강호는 별다른 부침 없이 계속 최고 흥행스타 가도를 달려왔고, 그렇게 올해 한국나이 51세가 됐다.

대단한 일이다. 남자스타들이 장수하는 할리우드에서도 그리 자주 보는 일이 아니다. 거기다 송강호는 미남형 배우도 아니고, 액션 등 특정장르에 특화된 배우조차 아니다. 그저 연기 잘 하는 배우란 인식 정도만 있을 뿐이다. 그 정도 조건과 스탠스로 20여 년째 정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 배우란 어느 대중문화시장에서나 대단히 예외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럼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송강호란 배우에 대해 나열되는 인상은 대개 비슷비슷하다. 소박하다, 꾸밈없다, 편안하다, 이웃집 아저씨 같다 등등. 둥근 얼굴에 살집 있는 체형, 경상도 억양이 남아있는 말씨, 품새부터 연기패턴까지 모두 그런 인상을 결정짓는다. 그야말로 ‘소시민’이란 단어에 딱 적합한 인상이다. 그래서 역할들도 대개 그런 노선에서 맡아왔다. 그런데 여기서 그의 1000만 영화들을 나열해보면 또 다른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괴물’과 ‘변호인’, 그리고 ‘택시운전사’, 모두가 ‘별 생각 없이 자기 안위만 생각하며 살던 소시민’이 ‘특별한 계기’를 만나 ‘각성’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른바 ‘소시민의 각성’ 테마다.

돌이켜보면 송강호 전체 영화 커리어가 이런 테마의 반복구조다. 그에게 주연급 첫 히트작이 된 ‘반칙왕’부터 시작해 ‘살인의 추억’ ‘효자동 이발사’ 심지어 지난해 ‘밀정’까지도 굳이 말하자면 이 같은 테마의 변주에 속한다.

더 흥미로운 건, 이런 테마를 지닌 영화로 성공을 만끽한 배우는 비단 송강호뿐만이 아니란 점이다. 곧 신작 ‘남한산성’으로 관객들을 만나게 될 이병헌 역시 커리어 최고 히트작은 같은 테마를 지닌 ‘광해, 왕이 된 남자’였다. 최민식 역시 ‘오늘만 대충 수습’하던 오대수가 특별한 계기를 만나 각성하고 전혀 다른 인격으로 거듭나는 내용의 ‘올드보이’가 대표작이다. 물론 그밖에도 유사한 사례는 수도 없다.

결론은 단순하게 나온다. 저 ‘소시민의 각성’ 테마는 곧 한국영화계 고정 히트 아이템이나 마찬가지란 것이다. 적어도 2000년대 들어서 부턴 언제나 그랬다. 그럼 ‘송강호 전성시대’의 비결도 이해가 쉬워진다. 송강호는 저 ‘소시민의 각성’ 테마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란 것이다.

일단, 언급했듯 ‘소시민’ 개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조건들을 지니고 있다. 선 굵은 인상에 미남형인 이병헌이나 최민식 등보다 훨씬 적합도가 높다. 그리고 코미디와 드라마를 능란하게 오갈 수 있는 연기패턴 덕에 코미디 요소가 짙은 소시민 묘사에서 드라마 요소가 강한 각성 과정 묘사까지 한꺼번에 아우를 수 있다. 그러니 그런 역할들이 계속 그에게 주어질 수밖에 없었고, 또 그만큼 충분히 효과를 거둬 끊임없이 흥행작을 배출해낼 수 있었다는 것. 그런 점에서 ‘송강호 전성시대’란 동시에 ‘소시민의 각성 테마 전성시대’란 얘기도 되고, 당연히 그 반대도 성립된다.

좀 더 생각해보자. 대중문화시장에서 ‘당대 히트 아이템’ 조건에 대해서다. 사실 단순한 얘긴데, 이른바 ‘당대 판타지’를 다루는 콘텐츠가 곧 히트 아이템이 된다. 그러려면 일단 ‘당대 콤플렉스’를 알아야 한다. 모두가 가난하고 힘든 시절엔 반대로 중산층 이상 가정의 평화로운 일상이 판타지가 된다. 세대 간 대립이 극심할 땐 원만한 대가족을 다룬 콘텐츠가 판타지물이다. 그럼 저 ‘소시민의 각성’ 테마는? 당연히 그렇게 ‘각성’할 수 없는 조건, 오직 현실에만 발맞춰 살아가야만 하는, 그렇게 살기에도 바빠 정신없는 시대의 판타지가 된다.

그런데 그게 바로 지금 영화 주 소비층 청년세대의 현실이 아닌가 말이다. 취업 차원에서 늘 불안과 공포를 안고 산다. 교육도 이젠 안심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 힘들다. ‘생존’이란 조건 자체가 버겁게 느껴지기만 한다. 여기에 경제 불황기 주로 나타나는 청년세대의 추상적 가치 추구, 즉 정의, 공익, 개성 등과 같은 부분에 집착하는 현상도 겹쳐진다. 그러니 바로 이런 시대의 히트 아이템이 곧 ‘각성’해서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는 삶을 사는 소시민들 모습이 된다는 것이다. 그게 지금의 시대적 콤플렉스이자 판타지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송강호 전성시대’도 왔다는 것이다.

흔히 한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에 주어지는 수식어 중 빠지지 않는 게 있다.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한”이란 레토릭이다. 틀린 레토릭이다.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는 언제나 시대의 ‘아픔’이 아니라 ‘판타지’를 대변해왔다. 그리고 현 시점 그런 판타지를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는 배우가 바로 송강호다. ‘송강호 판타지’의 시대다.

끝으로, 송강호 인기의 장수비결에 대해, 어쩌면 가장 결정적일 수 있는 부분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체 왜 송강호는 ‘세대교체’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언급했듯 송강호도 이미 50대에 이르렀고 그만큼 맡을 수 있는 역할도 줄어들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야말로 ‘대체할 사람’이 없으니 그가 계속 캐릭터 나이를 거슬러서라도 주연을 맡게 된다. 이는 곧 송강호가 지닌 조건들을 공유하는 배우들이 그동안 제대로 배출되지 않았다는 것,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한국영화산업에서 그런 배우들에게 제대로 기회를 줘본 적이 없다는 방증이다. 히트 아이템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성립돼있었는데, 여전히 주연급으로 ‘키우는’ 배우들은 깎아지른 듯한 미남, 선 굵은 카리스마 등등 그에 잘 부합하지 않는 형태로 고정돼있다. 히트 아이템과 스타 이미지가 서로 어긋나있는 상당히 기이한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700만 가깝게 접근한 깜짝 히트작 ‘럭키’의 유해진이 그나마 주연급으로 등극해줬다는 점에 이목이 쏠린다. 이제야 한국영화산업에서도 ‘송강호 풍’ 배우들 기능과 저력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일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배우가 콘텐츠 붐을 이끄는 게 아니라, 콘텐츠 붐이 그에 걸 맞는 배우를 띄워 올리는 것이다. 만날 특A급 배우들 신작이 픽픽 나가떨어지는 광경에 ‘흥행스타 부재현상’ 같은 불평이나 하지 말고, 흥행스타에 대한 현실적 개념부터 다시 재정립해 볼 필요가 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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