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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30. 요즘 부모와 자식사이

입력 : 2017-08-13 20:16:16 수정 : 2017-08-13 20: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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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의 하나인 ‘부자유친(父子有親)’은 부모는 자식에게 인자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존경과 섬김을 다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지켜야 할 전통적인 덕목이지만 핵가족화하면서 부자관계가 예전만큼 끈끈하지 못하다. 자식은 영원한 채권자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건사고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아무리 세상이 험악해져도 부자간에 흐르는 영적 DNA만큼은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예전 구명시식 신청자들은 대부분 중장년층이었지만 최근에는 신청자 상당수가 20, 30대가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 80∼90년대 태생인 이들은 주로 부모님 중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났거나, 친구 또는 애인, 정혼자를 불의의 사고로 잃은 경우다. 신청자가 젊어지면서 초혼되는 영가도 함께 젊어지고 있다. 구속보다는 자유로운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종종 당황스러운 일도 벌어진다.

구명시식 당일 찢어진 청바지, 노출이 심하거나 붉은 계통의 튀는 옷을 입고 나타나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화려한 화장에 마치 패션쇼를 방불케 하는 현란한 옷차림이 다른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럴 때마다 세대 차이인가 생각하면서 엄숙한 분위기에 동참해주기를 권한다.

너무 자유분방하다는 생각과는 달리 영혼에 대한 이들의 관심과 이해는 놀라울 정도로 대단했다. 명상을 생활화하고 관련서적을 가까이 하며 영혼 영화를 좋아하는 것. 대부분 인터넷과 칼럼을 통해 후암선원을 알게 됐다는 이들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 기성세대들과 얘기할 때보다 훨씬 편할 때가 있다. 그러나 구명시식을 하다보면 의외의 모습도 보여주곤 한다.

서른을 눈앞에 둔 청년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부친을 위해 구명시식을 청한 적이 있다. 의식이 시작되자마자 청년이 영가를 향해 말을 꺼냈다. “왜 내 말을 안 들었어? 내가 그렇게 담배피우지 말고, 술 많이 마시지 말라고 노래를 불렀잖아. 그러니까 간암으로 죽지.” 처음에는 내가 친구 영가를 초혼했나 싶어 흠칫 놀랐다. 그러나 분명 나타난 것은 부친 영가였다.

몇 년 전만 해도 영가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상대에 따라 다르지만 언제나 깍듯한 존대어였다. 때로는 마치 사극을 보는 것 같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자연스러웠다. 공손한 대화 속에 외침과 후회의 눈물이 함께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날은 전혀 달랐다. 과거 부친 영가가 나타나면 아들을 혼내거나 무게를 잡고 말하곤 했는데 두 부자의 대화는 분위기가 달랐다. 부친 영가는 아들의 호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아빠도 많이 후회하고 있어. 그때 우리 아들 말 잘 들었으면 지금쯤 건강하게 살아 있었을 텐데. 잘못했다”면서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아빠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거기선 담배도 피우지 말고 술도 마시지 마. 건강하게 잘 지내야 해.” 아들의 마지막 당부를 끝으로 구명시식은 끝이 났다. 영가에게 시종일관 반말로 응수하던 아들. 누가 보면 버릇없다 할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 어떤 존댓말보다 진실하고 감동적이었다.

요즘 부모와 자식 사이는 많이 변했다. 다분히 계산적이고 삭막한 관계도 있지만 그래도 애틋함은 남아있는 것 같다. ‘불효자, 불초자’ 운운하며 부모 영가 앞에서 통곡하며 가슴속에 있는 못 다한 말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친구처럼 대하고 충고까지 하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광경이 불편하거나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두 부자에게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영혼의 맺음, 즉 ‘유친(有親)’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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